창작의 고통

서태지도 창작의 고통이 견디기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그 창작의 고통이 오로지 음악에서 뿐이겠는가.

  우리는 세상을 살아 가면서 수 많은 창작 활동을 한다.
  ‘나는 한번도 창작을 하지 않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마저도 이미 살아 오면서 수 많은 창작 활동을 해 온 것이다.

  ‘댓글’에서 그 간단한 예를 찾을 수 있겠다. 악플러든, 그냥 의견을 밝히고자 댓글을 쓰게 되었건 우리는 크고 작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 창작의 고통을 느끼면서 그 글을 작성하게 된다.

  만약 악플러 였다면 어떻게 댓글을 써야 나의 악감정을 다른이에게 드러낼 수 있을지, 어떤 욕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할지, 본문의 어떤 허점을 파고 들어야 본문의 창작자나 본문 글의 대상에게 치명적인 정신적 피해를 줄 수 있을지 수 많은 고민을 할 수도 있겠고, 의견을 밝히고자 하는 댓글도 어떻게 적어야 나의 생각과 의견을 다른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내 댓글이 부족한 점이 없는지 등 많은 생각과 고뇌를 견디어 낸 후 최종적인 댓글 등록에 이르를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적으면서 내용을 썻다 지웠다 고민을 해 본적이 있다. 그 많은 고민들을 하면서 결국은 댓글 작성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댓글을 완성해서 등록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댓글을 적으면서 고민하는 수 많은 부분들이 나는 ‘창작의 고통’의 일부분 이라고 생각한다.

  짧은 댓글을 작성하는 데에도 이토록 고통을 수반 하는데, 긴 내용의 글을 작성하는 창작자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감수 해 나가면서 작성을 완료 할 수 있었겠는가.

  디지털화 된 온라인 컨텐츠는 오프라인의 그것 보다 복사 및 변형이 쉽다는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 약점을 이용해 남의 창작물을 훔쳐와 자기것 인냥 행동하는 것은 무척이나 얄밉다.

  고통 없이 무언가를 가지려고 하지 말자. 똑 같은 것을 갖게 되어도 고통 없이 얻은 이는 고통을 겪고나서 얻은이와 분명 차이가 나게된다. 시간이 지나면 밑천이 떨어진다고나 할까. 꼭 온라인 상의 글 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물에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가요계 역시 여기저기 만들어 져 있는 것들을 짜 맞추고 그럴듯하게 포장에만 신경쓰다 보니 정작 끊임없는 고통끝에 창조된 창작물은 적은 편이다. 고통이 없었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은 고통만으로 발전해온 우리네 음악시장은 결국 시간이 지나서 음악시장의 침체라는 최악의 결과를 몰고 왔듯이 고통 없는 창작은 의미도 없을 뿐더러 값어치도 없는 것이다.

  어렸을적 학교에서 글짓기를 하면, 내 글의 일부분을 베껴가서 자신의 글 마냥 작성 해서 제출하는 친구들이 무척이나 얄미운 적이 있었다. 나 역시 친구들이 조금씩 작성 해 나가는 글을 읽으면서 내가 일부분 유사한 내용으로 글짓기를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참고도 참고 나름이지, 학창시절 내내 글짓기는 죄다 친구들의 글을 짜집기 하고 베껴서만 내던 친구들은 분명 나이가 들어서도 맞춤법을 못 맞추고, 어법이 틀리는 등 고통없이 성장해온 이들만의 부작용을 평생 가지고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남의 창작물을 탐하지 말자. 자신의 것만 가지자.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