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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천재를 만나게된다.

살다보면 천재를 만나게된다.
이현세 선생님께서 서울신문에 기고하신 글이랍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서로 비슷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방.사 회원모두 한번쯤 진지하게 읽어볼만한 글인 것 같아 대문에 올려봅니다.

…살다 보면 꼭 한번은 재수가 좋든지 나쁘든지 천재를 만나게 된다. 대다수 우리들은 이 천재와 경쟁하다가 상처투성이가 되든지, 아니면 자신의 길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평생 주눅 들어 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취미나 재능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평생 못 가본 길에 대해서 동경하며 산다.
이처럼 자신의 분야에서 추월할 수 없는 천재를 만난다는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일이다. 어릴 때 동네에서 그림에 대한 신동이 되고, 학교에서 만화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만화계에 입문해서 동료들을 만났을 때, 내 재능은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중에 한두 명의 천재를 만났다. 나는 불면증에 시달릴 정도로 매일매일 날밤을 새우다시피 그림을 그리며 살았다.

내 작업실은 이층 다락방이었고 매일 두부장수 아저씨의 종소리가 들리면 남들이 잠자는 시간만큼 나는 더 살았다는 만족감으로 그제서야 쌓인 원고지를 안고 잠들곤 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한달 내내 술만 마시고 있다가도 며칠 휘갈겨서 가져오는 원고로 내 원고를 휴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타고난 재능에 대해 원망도 해보고 이를 악물고 그 친구와 경쟁도 해 봤지만 시간이 갈수록 내 상처만 커져갔다. 만화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고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내게도 주눅이 들고 상처 입은 마음으로 현실과 타협해서 사회로 나가야 될 시간이 왔다. 그러나 나는 만화에 미쳐 있었다.

새 학기가 열리면 이 천재들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꼭 강의한다. 그것은 천재들과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천재를 만나면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면 상처 입을 필요가 없다.

작가의 길은 장거리 마라톤이지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천재들은 항상 먼저 가기 마련이고, 먼저 가서 뒤돌아보면 세상살이가 시시한 법이고, 그리고 어느 날 신의 벽을 만나 버린다.

인간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신의 벽을 만나면 천재는 좌절하고 방황하고 스스로를 파괴한다. 그리고 종내는 할 일을 잃고 멈춰서 버린다.

이처럼 천재를 먼저 보내놓고 10년이든 20년이든 자신이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산다는 것은 긴긴 세월에 걸쳐 하는 장거리 승부이지 절대로 단거리 승부가 아니다.

만화를 지망하는 학생들은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매일매일 스케치북을 들고 10장의 크로키를 하면 된다.1년이면 3500장을 그리게 되고 10년이면 3만 5000장의 포즈를 잡게 된다. 그 속에는 온갖 인간의 자세와 패션과 풍경이 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서 그려보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것이다. 거기에다 좋은 글도 쓰고 싶다면,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면 된다. 가장 정직하게 내면 세계를 파고 들어가는 설득력과 온갖 상상의 아이디어와 줄거리를 갖게 된다.

자신만이 경험한 가장 진솔한 이야기는 모두에게 감동을 준다. 만화가 이두호 선생은 항상 “만화는 엉덩이로 그린다.”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이 말은 언제나 내게 감동을 준다. 평생을 작가로서 생활하려면 지치지 않는 집중력과 지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 그런 천재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천재들은 너무나 많은 즐거움과 혜택을 우리에게 주고 우리들의 갈 길을 제시해 준다. 나는 그런 천재들과 동시대를 산다는 것만 해도 가슴 벅차게 행복하다.

나 같은 사람은 그저 잠들기 전에 한 장의 그림만 더 그리면 된다. 해 지기 전에 딱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어느 날 내 자신이 바라던 모습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정상이든, 산중턱이든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바라던 만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출처: 게임 개발자 네트워크 (jzs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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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공감할꺼라 생각합니다.

내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분야, 그래서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노력하는데..
그다지 노력한다고 느껴지지 않는 친구나 선배, 동료가 훨씬 좋은 결과물을 내 놓으면 화가납니다.
그를 상대로 안간힘을 써 보지만, 결국 자신만 상처만 입게되는 것.

학창시절 공부를 열심히 했던 사람은 학업성적을 통해,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은 업무에 대해..
한번쯤은 겪어봤을법한 느낌이네요.

살아가는 동안 모두들 최소 한명 이상의 천재는 만나게 되는것 같습니다.


4 개의 댓글

  1. 천재와 같은 일을 하면서 묵묵히 평정심을 유지하기란 참 힘든 일이겠어요. 저는 아직은 천재적인 인간을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이현세님 말씀대로 적어도 한 명은 만나게 되겠지요. 미리 준비를 해야 하나 이거…하핫. 글 잘보고 갑니다~

    1. 글 중에서 ‘가끔 지구력 있는 천재도 있다.’는 STARGAZER님 블로그의 글에서 즐기는 천재와 일맥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경쟁을 하는 것 만큼이나 천재를 경쟁상대로 두고도 태연한척 있어야 한다는 것이 STARGAZER님 말씀처럼 힘든 일일꺼라 저도 생각해요.ㅜㅜ

  2. 저공비행사 샤린

    아 그렇군요.
    동시대에 사는 사람만이 가지는 행복. 그걸 잠시 놓쳤군요.

    1. 행복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을 행복이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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